[문예마당] 어머니의 DNA가 또 나왔어요
아들 가족이 오랜만에 왔다. 그새 아이들이 훌쩍 자랐다. 틴에이져인 큰 손자와 둘째 손자의 머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파마를 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며느리가 “어머니, 어머니 닮아서 곱슬머리잖아요” 하며 웃었다. 어릴 때는 반질반질 윤이 나고 차분했던 손자들의 머리카락이 붕 뜨고 곱슬곱슬해졌다. 꼭 파마머리 같았다. 얼굴이 작은 데다 머리가 붕 뜨니 서양 아이들처럼 보였다. 내가 두 손자에게 괜찮냐고 물었더니 아주 만족스런 표정으로 좋다고 하였다. 난 마음이 놓였다. 미국 땅이다 보니 그들도 곱슬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 내가 보기에도 멋져 보였다. 우리 애들도 중·고등학교만 들어가면 곱슬머리가 되었다. 어릴 때는 머리카락이 윤기가 나고 반질반질해서 친하게 지낸 이웃이 잘 먹여서 그런가보다고 부러워했다. 거기다가 손자 둘은 혈액형도 나하고 같은 A형이다. 며느리는 셋째 아들을 낳고 “어머니, 어머니 DNA가 또 나왔어요”라고 했다. 생물을 전공하고 제약회사에서 근무한 며느리는 근거 있는 말을 애교 있게 했다. 인터넷에 들어가 곱슬머리가 된 이유를 찾아보니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에서 ‘성호르몬 등 체질의 변화로 인해 사춘기부터 곱슬머리가 된다’에 해당한 것 같았다. 그러한 현상이 유전된 것이다. 사진을 보면 내 머리카락도 역시 어릴 때는 윤기가 나고 반질반질했는데 여고 때 기숙사 생활하면서부터 감당할 수 없는 곱슬이 되었다. 나는 그때 기숙사 물이 수돗물이 아닌 지하수 펌프 물이고 비누가 나빠서 그런 줄만 알았다. 곱슬머리와 교복은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 빳빳하게 풀 먹인 하얀 칼라의 교복에 반듯한 직모를 한 친구들이 그렇게 부럽고 신기하게 보였다. 그런데다가 내 짝꿍도 나 같은 악성 곱슬이었다. 고3 때 입시 공부에 정신없다가도 우리 둘의 모습을 본 친구들은 박장대소를 하곤 했다. 파리만 날아가도 깔깔대고 웃을 때가 아닌가! 친구들은 공부하기 싫으면 부채꼴로 붕붕 떠 있는 우리 머리를 보고 늘 웃어댔다. 나 역시 친구 머리가 맘에 들지 않아서 같이 웃곤 했다. 어릴 때 친척 집에 가면 ‘누구와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기분이 많이 달라졌다. 어린 딸들은 자기 엄마가 젊고 예쁜데 늙은 할머니를 닮았다고 하면 좋을 리가 없다. 말하는 사람은 할머니의 젊은 모습도 알기에 좋은 뜻으로 얘기해도 어린 애들은 우선 시각적으로 늙은 할머니를 좋아할 리가 없다. 그런데 우리 손자들은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곱슬머리도 좋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팬데믹으로 바깥출입도 줄이고 미장원을 갈 수가 없을 때 나는 내 머리카락을 손수 잘라 보았다. 좀 삐뚤거려도 티가 나지 않았다. 곱슬머리의 장점이 드디어 드러났다. 지금도 그때 사진을 보면 손색이 없다. 내 마음대로 모양을 바꿀 수도 있었다. 그냥 싹둑 싹둑 잘라도 서로 조화를 잘 이루었다. 나는 비로소 내 머리카락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 속담에 ‘양지가 음지가 되고, 음지가 양지가 된다’ ,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는 말이 있다. 무서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내 곱슬머리가 빛을 보게 되었다. 외적으로 유전은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다. 얼마든지 노력하고 돈을 들여 바꿀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면적인 것은 문제가 된다. 며느리가 셋째를 낳고 “어머님의 DNA가 또 한명 나왔어요” 할 때 나는 은근히 걱정되었다. 내 속에 있는 나쁜 습관 즉 끈기가 없는 점, 우유부단한 점, 자신감이 없어 항상 주저하는 점, 성실하지 못한 점, 이런 것들을 닮지나 않았을까 겁이 났다. 손주들을 어릴 때부터 보면 그들의 소양을 알 수 있다. 다행히 나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손주는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모두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고 취미 생활도 열심히 한다. 그리고 모두 끈기가 있다. 어릴 때 레고를 맞추는 걸 보면 기어이 완성하고야 만다. 한 번은 아들이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서 아주 복잡한 레고를 사 왔다. 큰 애는 큰 기선이고, 둘째는 날개가 크게 달린 무서운 사람이었는데 큰 손자는 며칠을 걸려 조금씩 만들어 완성했고 둘째는 그날 저녁에 다 만들려고 낑낑거리다가 잘 안 되니 울기까지 했다. 옆에서 잠도 안 자고 지켜보던 막내가 둘째에게 “울지 말고 형한테 가르쳐 달라고 해” 하는데도 기어이 혼자서 이리저리 맞추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멋진 완성품이 되어 있었다. 내 안에는 없는 끈기를 보고 마음이 놓여서 몇번이고 칭찬을 했던 기억이 난다. 손주들이 다섯인데 모두가 매사에 성실하다. 이 얼마나 기쁘고 놀라운 일인지! 나의 노년을 행복하게 해주신 창조주 하느님께 오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영희 / 수필가문예마당 어머니 수필 어머니 어머니 우리 손자들 양지가 음지